미 감리교 역사의 흑인 여성 선구자들 2

연합감리교회 리온틴 털포 커런트 켈리 감독. 사진, 마이크 두보스, 연합감리교뉴스; 그래픽, 로렌스 글래스, 연합감리교뉴스.
연합감리교회 리온틴 털포 커런트 켈리 감독. 사진, 마이크 두보스, 연합감리교뉴스; 그래픽, 로렌스 글래스, 연합감리교뉴스.

“연합감리교회에 물어보세요(Ask The UMC)”는 연합감리교회가 기념하는 흑인의 달(Black History Month)과 여성의 달(Women's History Month)을 맞아, 미국 감리교 역사에 길이 남을 흑인 여성 네 명의 선구자적인 역할과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시리즈를 2회에 걸쳐 싣습니다. 오늘은 그 시리즈의 두 번째로 샐리 크렌쇼 목사와 리온틴 켈리 감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샐리 크렌쇼 목사는 흑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미 감리교의 목사 안수를 받은 인물이며, 아팔라치아 지역의 선교사로 섬겼다. 사진 제공, 베들레헴 센터. 

샐리 크렌쇼 목사는 흑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미 감리교의 목사 안수를 받은 인물이며, 아팔라치아 지역의 선교사로 섬겼다. 사진 제공, 베들레헴 센터.

샐리 크렌쇼 목사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샐리 크렌쇼(교회역사보존위원회) 샐리 크렌쇼 목사는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이었다. (뉴스레터-차타누가 타임즈 프리 프레스)

샐리 크렌쇼 목사(1900-1986)

샐리 크렌쇼는 여성들, 그중 특히 흑인 여성에게 목회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시기에 선교사이자 목사로 섬기며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크렌쇼는 갬몬 신학교와 클라크 대학(현재 클라크 아틀란타 대학교) 등 여러 감리교 학교에서 수학했으며, 테네시 웨슬리안 대학을 다닌 최초의 흑인 학생이기도 했습니다.

여성의 안수가 금지되던 1930년대에 설교를 할 수 있는 선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크렌쇼는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훗날 미(북)감리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에서 안수를 받은 최초의 흑인 여성 목사 두 명 중 한 명이 됩니다.

또한 감리교회가 여성에게 온전한 안수권을 허용한 후 2년이 지난 1958년, 크렌쇼는 흑인 교회들을 따로 분리하여 조직한 중앙지역총회(racially segregated Central Jurisdiction)의 동테네시 연회에서 최초로 안수를 받은 두 명의 흑인 여성 목사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남동부 지역총회(Southeastern Jurisdiction)와 홀스턴 연회(Holston Conference)의 최초 흑인 여성 목사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크렌쇼는 버지니아주 아팔라치 산맥에 위치한 광산촌에서 흑인 광부들을 위한 선교사로 섬겼고, 이후 테네시주 동부에 있는 빈민 지역 교회에서는 목회를, 차타누가 지역에서는 성경공부와 주일학교 수업 및 어린이들을 위한 급식 제공 프로그램 등의 선교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맞벌이 부모가 일하는 동안 집에 남겨진 아이들을 돌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 크렌쇼는 1940년대 후반 차타누가 지역에 굳 쉐퍼드 폴드 어린이집(Good Shepherd Fold daycare)을 설립했습니다. 이 보육 시설은 미리암 부룩이 1920년 필립스메모리얼 감리교회 지하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설립한 웨슬리 하우스 어린이집과 통합되었고, 한동안 샐리 크렌쇼 베들레헴 센터(Sallie Crenshaw Bethlehem Center)로 불리다가, 지금은 베들레헴 센터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2020년, 100주년을 맞은 베틀레헴 센터는 지금도 지역 공동체를 섬기며, 크렌쇼의 지도력이 남긴 귀한 유산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연합감리교회 리온틴 털포 커런트 켈리 감독. 사진, 마이크 두보스, 연합감리교뉴스. 

연합감리교회 리온틴 털포 커런트 켈리 감독. 사진, 마이크 두보스, 연합감리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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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온틴 털포 커런트 켈리 감독(1920-2012)

리온틴 털포는 지도자의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데이빗 털포 목사는 감리교 목사이자 오하이오주 하원의원이었으며, 어머니 일라 마샬 털포는 여성과 흑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지지자로, 신씨내티 도시 연맹의 설립자였습니다.

리온틴 털포는 종종 자신의 집에 들렀던 지도자들 중 한 명인 메리 맥로드 베튠이 어린 시절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했습니다. “너는 꼭 중요한 사람이 될 준비를 해야 한단다.”라는 이 말은 리온틴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리온틴의 두 번째 남편이었던 데이빗 캘리 목사가 세상을 뜨자, 남편이 섬기던 교회는 리온틴에게 남편의 후임 목사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평신도 설교가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었지만, 남편이 섬기던  자리를 감당할 만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명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바뀌게 되고, 그해 말, 리온틴은 본처 목사(local pastor) 과정을 마친 후, 웨슬리 신학교에서 목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1972년에 준회원(Deacon) 목사가 되고, 1977년에 버지니아 연회의 정회원(Elder) 목사로 안수를 받게 됩니다. (편집자 주: 당시에는 준목사를 deacon으로 정회원 목사를 elder로 불렀다. 지금은 Deacon(집사 목사)와 Elder(장로 목사)가 사역에 따라 분류된다.)

계속해서 그녀는 버지니아 연회의 프로그램 운영담당 부디렉터로 파송 받아 섬기다, 훗날 연합감리교회 제자사역부의 전도사역부를 담당하는 지도자가 됩니다. 

1984년, 서부 지역총회는 동남부 지역총회의 회원이던 리온틴을 감독으로 선출했습니다. 그렇게 리온틴 켈리는 연합감리교회 역사에 있어 두 번째 여성 감독이자, 전 세계 주류 교단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감독이 되었습니다.

서부 지역총회를 섬겼던 멜빈 탤버트 은퇴감독은 그녀의 감독 선출을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억한다며, “남동부 지역총회의 동료 감독들은 그녀의 감독 선출을 단호하게 반대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캘리포니아/네바다 연회의 감독으로 섬기던 켈리 감독은 아프리카 이니셔티브의 창립 멤버로서 1988년 아프리카 대륙 내 최초의 연합감리교 대학인 아프리카 대학교를 설립하는 데 공헌하며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켈리 감독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습니다.

샤론 브라운 크리스토퍼 은퇴감독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리온틴 켈리 감독은 많은 여성 목회자들, 특히 여성 감독들의 영적인 어머니였습니다.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미래를 꿈꾸게 했고, 우리가 불안이나 욕심에 굴복하지 않도록 잘 붙들어 주었고, 우리로 하여금 연합감리교회에 새로운 지도자들을 세우는 일에 헌신하도록 권면했습니다. 그 어떤 일에도 그녀의 신 중심적이며, 거침없는 사고는 아직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앞으로도 우리를 빚어내고 가르치리라 기대합니다.”

시리즈 보기

미 감리교 역사의 흑인 여성 선구자들 1

이 기사는 연합감리교뉴스 Ask the UMC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tkim@umnews.org로 이메일을 보내거나 (630)797-6848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더읽기 원하시면, 격주 e-뉴스레터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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